오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제작 발표회가 열렸어요. 곧 첫 회 방영을 앞두고 있고요. 어떤 인물을 연기하나요? 제가 맡은 인물은 ‘백경’이에요. 극 중 가장 성격이 거칠고 표현에 서툰 아이죠. 그런 성격을 가진 데에는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과거가 있어요. 겉으로는 강하고 속은 여린, 외강내유의 인물을 표현하는 건 힘든 연기라고 줄곧 생각해왔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행동은 강해 보여도 눈빛은 흔들려야 하는 그런 디테일. 그런 점이 아직 많이 부족해서 백경이란 인물의 본질적인 부분을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게 성장해온 아이.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드라마의 배경이 만화 속이에요. 황당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이죠. 비현실적인 설정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 믿고 연기하고 있어요. 백경은 <비밀>이란 책 속 인물인데, 이 책을 쓴 작가가 원하는 말이 있고 실제 캐릭터가 원하는 말이 있어요. 자신이 원해서 하는 말과 원치 않는데도 하는 말이 있으니 그 구분이 확실해야 하죠. 김상협 감독님은 자신의 색이 뚜렷한 분인데 현장에서는 저희를 믿어주세요.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배경이 고등학교이다 보니 또래 배우들이 많이 등장해요. 이렇게 나이와 경력이 비슷한 배우끼리 뭉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이 많지 않은데, 그런 만큼 현장에서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또 다른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의 걱정과 고민이 비슷할 것 같아요. 모두 나이가 비슷하고 경험한 작품 수도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긍정적인 자격지심 같은 게 들어요. 저와 경력이 비슷한데도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새롭고 대단해 보여요. 저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도 탄탄한 선배님들이 그렇게 연기하는 모습을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래 배우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와 또 다르게 대단하게 느껴져요. 많은 것을 배우는 현장이에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마르꼬’를 시작으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까지 1년 동안 4편의 작품에 출연했어요. 그중 <검블유>가 많은 주목을 받았으니 좀 더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겠죠? ‘지환’이라는 인물 자체가 의아하게 다가왔어요. 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한 인물도 아닌데 굉장히 열심히 살고 복합적인 인물이거든요. <검블유>는 제게 꽃 같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저를 예쁘게 피게 해주었고 지지 않았으면 하는 꽃.
꽃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 해봤어요? 질지도 몰라서 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웃음) 요즘의 제가 활짝 피어 있는 것 같아요. 늘 즐겁고 긍정적으로 일하려고 해요. 1년 내내 열심히 연기했는데 아직은 체력이 충분하고 현장에서 만나는 선배나 동료 배우들의 열정이 저를 흥분시킬 때도 있고 그래요. 그런데 가끔 지금 피어 있는 꽃이 일시적인 걸까 봐 두렵기도 해요.
<검블유> 때 ‘설댕댕’으로 불렸던 것과 비교해 데뷔작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속 마르꼬는 외형적인 면도 극단적으로 달랐어요. 감독님이 야성미 넘치는 캐릭터를 원했어요. 데뷔하고 이런 캐릭터를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깔이 분명한 인물이죠. 극 중에서 NPC나 몹을 제외하고 머리는 산발에 화장도 진하게 하고 심지어 약물에까지 손을 대는 유학생이라니. 분장할 때도 재미있었어요. 눈썹을 반 넘게 밀었는데 그것마저 무척 신기했죠. 그래서 <장사리>에서 머리를 밀 때도 가뿐한 마음으로 임했어요.(웃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첫 촬영의 순간이 여전히 또렷이 기억나나요? 스페인에서 첫 촬영을 했어요. 매니저도 없이 스페인에 갔는데, 그런 제게 안길호 감독님이 촬영 순서가 늦으니까 잠이라도 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길에서 잠들었죠.(웃음) 주변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분장한 다음 촬영장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고, 현장에서 오케이, 컷, 이런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촬영 현장을 이렇게 봐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현장에서 좀 떨어져 혼자 있기도 했죠.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고 신비롭기도 했어요.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날 현장에서 느낀 설렘과 떨림이 무뎌지겠죠? 그럼에도 그때 가진 마음 중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배우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마르꼬를 연기할 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스태프나 다른 배우들이 제게 무심한 듯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기억에 많이 남고 소속감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내며 현장의 끈끈함을 늘 잃고 싶지 않아요. 그런 끈끈함이 작품을 향한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요.
그때 들은 가장 위안이 된 한마디가 있나요? 안길호 감독님의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잘하고 있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어요. 연기하기로 마음먹고 전공을 정한 후, 그리고 첫 촬영을 하기까지 가장 큰 고비가 된 순간이 있다면요? 없었어요. 요즘은 드라마 촬영 때문에 하루에 두세 시간 자는 게 보통인데 아무리 피곤해도 현장에 가면 즐거워요. 물론 고민이 생길 때는 있죠. 그럴 때면 현장에서 감독님이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해요. 그러다 보니 굉장히 힘든 순간도 잘 넘긴 것 같아요. 그렇게 넘어온 덕에 힘들었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아요.
꽤 빠른 속도로 필모그래피를 늘려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엔 뭘 하며 보내요? 오래전부터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다른 게 제 인생에 턱 하고 끼어드는 느낌이 들어요. 연기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최근에 <원티드>를 한 번 더 봤는데 다시 봐도 대단하더군요. 총알이 휘는 것처럼 보이는 CG 장면과 배우의 연기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그런 강렬한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낙서하는 것도 좋아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못했는데 펜으로 끄적이는 걸 좋아했어요.(웃음) 지금도 펜으로 글씨 쓰는 걸 좋아해서 대사를 쓰면서 외워요.
교과서를 외우는 것처럼요? 그런 거랑은 좀 달라요. 일종의 마인드맵 같은 거예요. 이를테면 백경이란 인물에 대한 첫인상, 성격, 주변 환경, 대사를 써나가고 의문점을 적어가요. 그리고 제 스스로 답을 하고. 그렇게 가다 보면 백경에게서 받은 첫인상에서 너무 멀어졌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첫 장을 보면 지금 백경에 대해 느끼는 것과 많이 다를 때도 있고요. 이렇게 분석해가며 인물의 본질을 알아가려고 하는데, 그 점이 연기로 잘 보일지는 모르겠어요.
연기할 인물에 대해 글로 풀어가는 건 언제부터 생긴 습관이에요? 연극 할 때부터요. 연극은 대사를 두 시간 가까이 이어가야 하잖아요. 공연장을 찾은 관객의 2시간을 책임지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텍스트에 대해 완벽히 아는 거죠. 연출자 중에 정해준 텍스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연기하기를 바라는 분이 많기도 하고. 좀 더 완벽하게 외우고 싶어 쓰기 시작했죠. 읽고 말하는 대사가 아니라 여러 번 생각하고 글로 적은 후에 비로소 꺼내는 대사가 보다 완성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촬영하는 화보이자 인터뷰예요. 많은 것이 처음이었던 올해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요? 열심히 지냈구나. 피 끓는 청춘이었구나. 나중에 앞으로 계속 채워갈 필모그래피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지금,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