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는 생각보다 생각이 많다. 그런 생각 끝에 ‘재미’라는 기준과 소신이 생겼다. 열일곱 살 때부터 4년간 한 연습생 생활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그 시간이 어땠는지 허투루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4년 후인 지금의 김민재가 더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된 것은 확실하다. <도깨비>의 ‘왕여’, <낭만닥터 김사부>의 ‘박은탁’. 소위 대박이 난 드라마를 연이어 끝냈지만 김민재는 더 잘나가는 것, 유명해지는 것, 연기를 잘하는 게 되는 데 대한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것과 행복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단단한 이야기였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생각 좀 줄이라는 타박을 한두 번은 들을지 모르지만 김민재가 지금처럼 고민을 찾아서 하는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어떤 것이든 자신의 몸으로 배우고 재미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여행을 많이 다니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김민재에게서 드러나게 될 날을 기다린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계속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친구들이랑. 포상 휴가로 세부에 다녀와서 바로 가평 갔다가 곤지암 리조트 갔다가 비발디파크 갔다가 일부러 쉴 새 없이 다니고 있어요. 제가 한 작품이 끝나면 후유증이 크거든요. 후유증을 덜려고 이번에 새로 시도한 방법이에요. 계속 바쁘게 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혼자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항상 출근한다고 표현했었어요. <낭만닥터 김사부>를 촬영할 때. 현장에 가는 걸 참 좋아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을 못 보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이상한 감정이 많이 들어요. ‘이게 뭐지?’ 허하고 외로워져요. 그냥 커피를 마시는데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요. ‘내가 왜 살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해요.
여행은 효과가 있던가요? 네, 계속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잘 안 자고 그러니까요. 여행 가면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낭만닥터 김사부> 끝난 이후로 혼자 잔 적이 거의 없어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두 작품이 연이어 끝났어요. 많이 성장하고 변화도 클 것 같아요. 굉장히요. 특히 <낭만닥터 김사부>는 ‘내가 왜 살까, 잘사는 게 뭘까, 나는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까’ 깊이 생각하게 한 작품이에요. 작품 속 김사부님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강동주 선생님이 김사부님한테 “사부님은 최고의 의사입니까, 좋은 의사입니까?”라고 물었는데, 김사부님이 “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사다”라고 답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사람들한테 필요한 배우가 돼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전 그런 배우 말고 사람들이 웃고 싶거나 울고 싶거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 김민재의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필요한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일과 장래에 대해 생각이 아주 많네요. 또래들이 스물예닐곱이 됐을 때에야 할 생각을 지금 하는 것 같아요. 연습생 생활을 할 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면이 있고, 저는 이 직업에 대해서 흔들린 적이 없어요. 취미도, 특기도 이걸로 만들고 싶어서 열일곱 살 때부터 다른 생각은 안 했어요. 좋아하고 재밌으니까요.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건 자신의 결정이었어요? 네, 제 결정이었어요. 연습생 시스템이 굉장히 갑갑한데 우연히 연기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욕도 하고 하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리고 현실에서 사극 속의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데 촬영장에 가면 그게 현실이 돼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하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제가 어떤 일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게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거든요. 4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그게 전혀 아깝지 않았고 새로운 재미를 찾아 간 시기였던 것 같아요.
자신의 어떤 부분을 뱉고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봐요. 지금껏 내내 참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린 나이에 몰라도 좋을 감정도 많이 겪었고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어요. 어떤 이상한 책임감에 사로잡혀서 꿈을 이루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고진감래라는 말 같은 건 믿지 않게 된 건가요? 사람들이 흔히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많이 얘기하잖아요. 왜 무언가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그냥 재미있어서 내 꿈을 이루려고 하는 건데 꼭 누군가를 이겨야 하나, 이걸 그렇게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았어요.
참고 견디는 동안 지나간 내 삶은 보상받을 길이 없죠. 결과적으로는 고작 이걸 얻기 위해서 그 긴 시간을 견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회의가 굉장히 많이 들죠. 그게 목적이 되어버리는 느낌이잖아요. 저는 마인드를 바꾸니까 과정 자체도 재밌고 목적이 오히려 없어진 것 같아요.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현재 내 앞에 있는 재밌는 것들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요.
덜 받는 게 이 정도라는 거죠?(웃음) 네. 작품도 할 때는 재밌는데 끝나면 답을 못 찾으니까.
랩을 좋아하는 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인스타그램을 보니 노래도 잘하더군요. OST든 뭐든 음악적으로 기량을 펼칠 기회가 온다면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지금도 보컬 수업을 받아요? 아니요. 연습생 때부터 했으니까 그게 무척 싫은 거에요. 연기 수업도 받지 않아요. 잘못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김민재가 선택하고 김민재가 해보고 김민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보다는 김민재로서 흙탕길을 걷는 게 더 재밌어요. 보컬도 춤도 랩도 정답이 없으니까 그냥 내가 재밌는 것을 따라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 않고 있어요.
현명하게 살고 있네요. 이게 현명한 건지 아닌지는 40대쯤 되면 알겠죠. 그런데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까요.
음악 취향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음악 편식이 심했어요. 힙합이 아니면 잘 안 들었죠. 그런데 피아노를 치다 보니까 요즘에는 클래식도 듣고 피아노 곡도 듣고 발라드도 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에 따라 듣는 음악이 달라요. 특정 상황에서 듣고 싶은 음악이 분명하죠. 그래서 음악이 없으면 담배를 끊은 사람 같은 증상이 와요. ‘어서 음악을 듣고 싶어!’ 이러면서. 그래서 자이언티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이 나오면 행복해요. 좋은 음악을 찾을 때도 행복하고요. 한 음악을 계속 듣다가 또 다른 음악 찾아서 듣고 이런 과정이 되게 좋아요. 친구들과 음악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어요. 모르겠어요.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작품을 선택해요. <낭만닥터 김사부>도 한석규 선배님 같은 대배우와 언제 같이 작품을 해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선배님한테 꼭 배우고 싶어서 결정했어요. <도깨비>는 오디션을 보고 안 된 줄 알았는데 카메오로 출연해달라고 하셔서 하게 됐고요. 첫회가 방송된 이후에 대본이 더 왔어요.
모든 이야기의 시초인 역할이잖아요. 이 정도 비중일 줄은 몰랐어요. 시청자로서는 재밌었고 사극을 해본 점도 좋았어요. 역시 찍는 거랑 보는 건 다르더라고요.
촬영이 힘들었나 봐요. 네. 문경에 갔다가 수원에 갔다가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잤어요. <낭만닥터 김사부> 촬영하느라 밤새우고 바로 <도깨비> 촬영하러 가고. 힘들었지만 촬영할 당시에는 재밌었어요. 지나고 나니까 행복한 추억이에요.
배우로서 지향하는 방향이 조금씩 생기고 있나요? 사람들한테 필요한 배우가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다시 돌려보고 ‘그 영화, 김민재가 했었지’ 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건 궁극적인 목표고 당장은 내가 재밌고 내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가장 커요.
같이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류승범 선배님. 사실 지금 있는 선배님들과 다 해보고 싶어요. <낭만닥터 김사부>를 찍으면서 목표가 생겼어요. 한석규 선배님이랑 아버지와 아들로 연기해보고 싶어요. 한석규 선배님께도 말씀드렸는데 좋다고 하셨어요.
막 스물두 살이 됐어요. 본격적으로 펼쳐질 20대가 어땠으면 좋겠어요? 다사다난했으면 좋겠어요. 제 20대 목표가 경험을 아주 많이 하는 거거든요. 배우로서도 그렇고 스물두 살의 청춘으로서도 많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지러울 정도로. 드라마가 망하기도 하고 잘되기도 하고. 연기력 논란은 없었으면 좋겠고.(웃음) 전 늘 제 연기를 보면 참 뻘쭘하거든요. 그냥 많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경험을 토대로 30대를 살아가고 싶어요. 많이 넘어지고 다쳐봐야 옳은 방법을 알고 현명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일이 있어야 재밌잖아요. 그래도 너무 힘든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있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