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SF9의 여덟 번째 미니 앨범 <9loryUS> 활동을 마무리했어요. 요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내년에 방송할 예정인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에서 ‘채현승’ 역을 맡았어요. 그래서 한창 촬영에 집중하고 있어요.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직장 선배 ‘윤송아’(원진아)와 그에게 직진하는 후배 채현승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채현승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채현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에요. 자존감이 매우 높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사랑도 미움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가 가진 매력은 한마디로 ‘거침없음’이에요. 그래서 대본 속 그의 모습에 대해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한 장면에서 채현승을 얼마큼 표현해야 앞으로 이어질 모습이 시청자가 봤을 때 개연성 있을지 고민한 거죠. 캐릭터를 세밀히 보여줄 수 있도록 집요하게 공부하며 애드리브도 시도해보고 있어요. 그리고 채현승이 저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를 연기하기 위해 준비하며 ‘내 이런 부분이 더 채워지면 좋겠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어떤 점에서 채현승이 본인과 다르다고 느꼈나요? 누구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 테고, 제게도 많은 자아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제까지 스스로 느낀 김석우라는 사람은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아요. 반면 채현승은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요. 그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서툴 뿐이지, 사실 마음이 되게 깊은 친구죠. 그리고 지난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하루’가 결이 하나라면 채현승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어요. 엮이는 인물들이 아주 많다 보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편으로는 이 중에 저와 닮은 점도 있는 듯해요.
한 인터뷰에서 작품 속 인물에 대해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다른 모습인 것 같다”고 말했죠. 연기를 하며 자기 내면의 모습을 발견해가는 게 쉬운 과정은 아닐 텐데, 이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나요? 연기는 글로 적혀 있는 내용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한 이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다른 사람들 또한 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어쩌다 발견한 하루> 촬영 당시 하루가 되어 일기를 썼다고 들었어요.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를 준비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방식이 있나요? 이번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대본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저를 얽매이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하지 않고 ‘그냥 한번 가보자’ 하며 부딪혔죠.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요. 스스로 찾은 답을 의심하며 불안해하거나 자신 있게 믿거나 둘 중 하나인 듯해요. 지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 이를테면 드라마 속 사무실의 제 자리에 놓을 소품을 가져가요. 펜이나 스티커가 붙은 위치 등에 제가 생각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실제 방송 화면에 잘 보이지 않거나 시청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제 동선 안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챙기려고 해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도 멜로드라마예요.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인물을 상상해보기도 하나요? 물론이죠.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캐릭터가 세거나 멋있어 보이지 않는 역할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연기한 인물이 보는 사람들에게 ‘로운의 누구’가 아니라 ‘그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 SF9이 데뷔 4주년을 맞았어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열심히, 바쁘게 살다 보니 크게 실감이 나지는 않아요.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사랑이 무언지는 잘 모르지만,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이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인 듯해요. 데뷔 초반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런데 욕심은 여전히 그대로예요. 저를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고요. 다만 그 욕심이 저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활동하며 여유가 생겼다고 느끼나요? 여유의 결에 차이가 있어요. 경주마에 비유하자면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것과 주변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달릴 때의 여유는 없지만, 넓은 시야를 위한 여유는 조금씩 찾아가려고 해요. 그래야 보이는 게 많거든요.
10월 10일에 SF9 온라인 콘서트 ‘눕콘’을 개최했어요. 온라인 콘서트는 요즘처럼 여럿이 모이기 어려운 시기에 비대면으로 편안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나는 이런 음악과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저를 보여주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그럴 수 있는 무대에 대해 생각하며 이번 콘서트를 선보였어요.
연기와 음악 등 다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일과 일상의 균형은 어떻게 조절하는 편인가요? 제 취향을 세심히 살펴보려고 해요. 예를 들어 저는 밴드 음악을 즐겨 들어요. 밴드 특유의 하모니가 멋있고, 각자의 개성이 모여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아름답잖아요. 그리고 음식은 한식을 제일 좋아해요.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단계예요.
요즘 새로 생긴 관심사가 있어요? 책을 읽고 있어요. 원래 소설을 주로 봤는데, 어느 날 문득 제가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생각을 보다 더 또렷하게 하기 위해 심리학이나 철학 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주변의 추천을 받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고를 때도 있고, 책 읽어주는 앱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를 이용하기도 해요. 독서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내면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책을 읽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주변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이를 위한 노력 중 하나고요. 그리고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그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이 단단해야 하는데, 저 자신에 대해 계속 자문자답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말 연기로 다수의 신인상을 받았고, 올해 초에는 SF9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Good Guy’로 음악 방송에서 처음으로 1위를 했죠. 그다음 단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나요? 숫자나 위치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느 정도는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래를 정할 순 없으니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해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잘 소화한다면 결과가 어떻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에 느낀 사소한 행복은 무엇인가요? 오늘 운동을 마치고 촬영장으로 오는데 날씨가 참 좋았어요. 평소 보지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순간 무척 행복했어요.
아직 좀 남긴 했지만, 스물다섯 살로 보낸 2020년은 어땠나요? 올해도 감사한 한 해였고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어요. 삶을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있어요. 지금의 저는 ‘나다운 삶’을 위해 제 틀을 점점 깨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