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도현은 화보 촬영을 즐기는 편인가? 노출도 약간 있었고, 무용 동작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거리낌 없이 해내서 조금 놀랐다. 전에는 어렵고 어색했다. 대사도 없는 데다 아무것도 없는 스튜디오에 혼자 서 있으니까 뭘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곤 했다. 다행히 몇 번 해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도 이따금 듣고, 그러면서 조금씩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할 때 음악을 틀어준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다. 초반에는 긴장해서 ‘삐’ 소리만 들렸는데 많이 변했다.
클로즈업 컷을 보니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이 꽤 다르더라. 왼쪽이 순해 보이고, 오른쪽은 날카로워 보인다. 그래서 어느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 인상이 완전히 다르다.
어느 쪽이 더 본인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왼쪽인 것 같다. 그렇지만 오른쪽 같은 모습도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드러나는 것과 반대되는 성정을 하나씩 품고 있으니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18 어게인>에서는 어떤 면을 자주 드러냈나? 내가 의도한 건 없었는데, 감독님이 정면과 오른쪽을 좋아하셨다.
어느 쪽이든 이 작품에서 배우 이도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몸은 열여덟 학생, 마음은 자식이 둘인 아저씨 캐릭터는 흔치 않으니까. 이 캐릭터를 구체화하기 위해 부부 관계나 부성애처럼 실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내밀하게 표현해야 했다. 감독님이 많이 끌어내주셨다.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감독님이 강아지를 생각하는 마음의 1백 배즘 되는 게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곱씹다 보니 부성애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외에는 아이가 있는 윤상현 선배와 김하늘 선배가 아이를 생각할 때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을 꾸준히 관찰했다. 한번은 김하늘 선배에게 만약 아이가 눈이 안 보인다면 엄마로서 기증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야지”라고 대답했다. ‘자식을 향한 사랑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음을 담아 연기했다.
연기에 대한 해답을 관찰로 얻는 편인가? 관찰하는 걸 워낙 좋아한다. 처음 연기를 배울 때 선생님이 ‘관찰 일지’를 써보라고 해서 거의 매일 통유리로 된 햄버거 가게 창가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했다. ‘저 사람은 연인과 싸울 때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저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 자기도 모르게 저런 웃음을 짓는구나’ 하는 식으로 일지를 썼는데, 그게 지금도 연기할 때 도움이 된다.
자신을 관찰할 때도 있었나? 거의 안 한다. 그런데 가끔 화를 내거나 울면서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아, 내가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그 순간부터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 그게 싫다. 본능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살고 싶다.
누구든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어릴 때 아르바이트를 꽤 많이 해봤는데, 막노동은 못 했다. 그걸 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고 싶다. 막노동하는 분의 대다수가 일급이 꽤 높은 편인데도 쉬지 않고 일을 나온다고 하더라. 그분들은 어떤 가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바쳐가면서 그렇게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곧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이 공개된다. 이 작품에선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정도 없고 냉철하고 차가운, 한마디로 내 오른쪽 얼굴을 제대로 드러낸 캐릭터다. 너무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아 걱정도 되는데, 그보단 기대가 크다. 작품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적 없는 신선한 형태이기도 하고, 스스로 내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연기를 하면서 자신에게서 색다른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나?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마냥 해맑은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전에는 웃음이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캐릭터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꾸 웃다보니 ‘예쁘다,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성격도 조금 밝아졌다.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런 편이다. 연기를 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하고, 안 하던 것을 시작하기도 한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은 어떤 건가? <소라별 이야기>라는 연극. 시골 마을의 아이들과 동물 이야기를 그린 마스크 극인데,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재수생 때 보고 너무 행복해져서 언젠가 저 작품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학교에 들어가서 그 작품의 역할을 하나 맡게 됐다. 시골 개 역할이라 대사가 ‘왈왈’뿐이었지만, 연기하는 내내 참 좋았다.
연기하는 데 기반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체력. 촬영은 대부분 시작 시간은 있지만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은 데다, 한참 화를 내거나 눈물을 쏟아내면서 격앙된 감정 연기를 한 후에도 다음 신 촬영이 남아 있을 때가 많다. 힘들고 지칠 법한 순간에도 연기를 할 수 있으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관찰하고 연기 연습을 하는 것만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기에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 하나가 생긴다면 어떤 걸 바라나? 항상 하는 생각인데 눈빛 하나로 다 되게 만드는 연기를 꿈꾼다. 내가 나름대로 자신 있는 건 목소리와 발성, 발음인데 언젠간 이런 걸 쓰지 않고 눈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눈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체력이 아니라 눈 힘을 키워야 하나?(웃음)
배우로서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나? 성공한 배우란 뭘까? <18 어게인> 8회에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보고 자기 아빠가 생각나 결국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감을 보고 굉장히 뿌듯했다. 매번 그럴 순 없겠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든다면 성공한 게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성공한 배우라고 봐도 되겠다. 맞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이 작품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