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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PLAYER
송명기
NC 다이노스
PROFILE
초등학교 3학년 때 애니메이션 <메이저>를 보고
야구를 시작했다. 건대부중과 장충고를 거쳐 2019년 NC
다이노스에 입단했고, 이듬해인 2020년 1군 무대에 올라
아홉 번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강심장과 빠른 볼을 무기로 NC
다이노스의 미래를 넘어 한국 야구의 미래로 나아가는 중이다.
WHO AM I
류현진 사인 볼
아버지 친구분이 선물로 준 건데, 내가 류현진 선수보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주는 거라고 하셨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유니폼
2020년, 한 시즌 내내 함께한 유니폼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글러브
처음 스폰서 받은 글러브.
이걸 끼고 6년승을 달성했다.
내게는 의미가 큰 글러브다.
우선 축하 인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NC 다이노스가 창단 이래 첫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프로 2년 차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라 생각했는데, 우승까지 해서 무척 기쁘다. 여기서 고마운 사람들을 다 얘기해도 될까? 일단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고, 나를 뽑아준 스카우터, 그리고 1군과 2군 감독님과 코치님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나? 한 구, 한 구, 스트라이크가 들어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됐다, 됐다’를 외치다가 마지막에 “됐다!”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팀의 우승을 차치하더라도 2020년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해였을 것 같다.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섰고, 무려 아홉 번이나 승리 투수가 되었다. 특히 2000년생 이후 선수 중 최초의 한국시리즈 승리 투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야구선수로서 2020년만큼 잊지 못할 기억이 많은 해가 또 있을까 싶다. 2020년을 시작할 때만 해도 1군에 오래 머무는 게 목표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그 덕분에 배운 것도 많다. 마운드에서 절대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마운드에 올랐을 때만큼은 절대 기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야구는 타이밍 싸움이라는 걸 배웠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감독님과 코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셨다.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을 때는 사실 공을 진짜 못 던졌다. 그 때문에 자책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쯤 감독님께서 문자메시지를 한 통 보내주셨다. 지금 하는 게 실패가 아니고 경험이라고, 너는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라고. 그 말에 자신감을 얻어 다시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하면서 미리 준비한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한국 야구계의 유망주, 영건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다. 뉴스에서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그런 말을 많이 듣긴 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긴 했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긴하다. 특히 팬들이 보물 같은 선수라고 얘기해줄 때가 제일 좋다.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은 무엇인가? 빠른 볼 스피드 아닐까.
다른 건 다 느린데 공만 빠르다는 얘기가 있더라. 맞다.(웃음) 특히 말이 느린 편인데, 어릴 때 친구들이 더 느리게 말할수록 반대로 볼은 더 빨라지는 거 아니냐며 놀렸었다.
강심장도 강점이 아닐까. 베테랑 선수도 떨릴 수밖에 없는 한국시리즈 무대에 처음 등판했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다 부순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난 던진다. 너희는 쳐라’ 하는 마음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몰랐는데, 보는 사람들이 마운드에 오르면 내 눈빛이 달라 보인다고 하더라.
원래 겁이 없는 스타일인가? 전혀. 평소엔 겁도 많고 소심하다. 운전하는 것도 무섭고, 감독님이나 엄마한테 혼나는 것도 무섭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를 보고 야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메이저>라는 만화책이었는데, 이걸 읽고 야구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해보니 공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무척 즐거웠고, 여러 포지션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사실 그 전에 하던 축구나 수영에 비해 덜 힘들어 보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인데, 막상 해보니까 야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더라.
처음 배울 때부터 포지션이 투수였나? 유격수나 중견수, 우익수도 해봤는데 몸이 맘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다. 느리기도 했고.(웃음) 투수가 제일 잘 맞았다. 내가 던져야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야구 하면서 짜릿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삼진 잡을 때. 특히 헛스윙 삼진을 잡을 때가 제일 짜릿하다.
그런데 막상 삼진을 잡아도 별다른 리액션이 없던데? 일부러 들뜨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있고, 부끄럽기도 해서. 그런데 한국시리즈 때는 삼진 잡고 이닝 끝낼 때 못 참고 기쁨의 포효를 한 번 했다.(웃음)
본인의 삶에서 야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큼인가? 90%는 되는 것 같다. 쉴 때도 야구 생각만 한다. 휴대폰으로 투구 폼 영상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을지 연구하거나 센터에 가서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기도 한다.
나머지 10%의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산책하면서 음악 듣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데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힙합과 발라드, 팝, 클래식도 좋아한다.
2020년의 목표를 초과 달성해서 새 시즌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새해 목표가 있다면? 우선 부상 없이 선발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가능하면 10연승과 무사사구 완봉승을 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일정한 상태로 한 시즌을 버틸 수 있는 체력과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고, 정신적으로도 자신감을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지난 시즌보다 나를 더 믿는 것 또한 목표 중 하나다.
야구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메이저리그는 꿈의 무대니까, 언젠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거기서 상도 받고 더 잘해서 영구결번까지 이루는 것. 최종 목표는 크게 갖고 싶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무얼까? 박찬호, 류현진, 오승환, 김광현 등 닮고 싶은 선수가 아주 많다. 그분들의 능력치를 따라가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박찬호 선수의 직구와 류현진 선수의 볼 컨트롤 능력을 배우고 싶다.
그 두 가지를 갖추면 거의 무적의 투수 아닌가? 메이저리그 씹어 먹는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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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차도하
PROFILE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침착하게
사랑하기’가 당선되며 등단한 1999년생 시인. 2020년 3월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를 선보였고, 다른 시인들과 함께
‘가시화 프로젝트’를 만들어 등단 후 경험한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WHO AM I
마스킹 테이프
시에서 언어가 해체되고 조립되듯,
마스킹 테이프도 뜯어 아무 데나
붙였다가 뗄 수 있다.
무언가를 꾸밀 때 쓰거나
수집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쓸모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 또한 시와 닮았다.
책갈피
문예지 <토이박스> SF 특집에 참여하며
만든 책갈피. 도서를 구매하고 작가를
후원한 독자에게 증정했다.
컴퓨터 창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여기서부터 읽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넣었다.
스티커
마음에 드는 곳에 붙이는 건 물론
어딘가에 끼워 사용해도 된다.
마스킹 테이프와 마찬가지로
‘콜린스’에서 구매한 제품인데,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라는
브랜드의 슬로건도 마음에 든다.
언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나?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다. 당시 입시 교육에 지쳐 있었는데, 글을 써 대학에 갈 수 있는 문학특기자 전형과 실기 전형에 대해 알게 됐다. 그 이후 글을 더 마음껏 읽었고 백일장에 나가기도 했다. 시 쓰기가 일종의 ‘허락된 일탈’이었던 셈이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시를 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특별히 시만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시에 더 관심이 갔던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화에서는 폭력을 보여주기 위해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촬영하는 반면, 시는 폭력적인 장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아도 되고 내가 느낀 인상이나 마음을 써도 되는 장르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나이가 만 스무 살이었다. 시인을 꿈꾼 이후 자연스럽게 등단을 준비하게 되었나? 맞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욕망이 있었고, 등단은 독자와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대학교 선생님에게 투고작을 보여드렸을 때 “나라면 이 작품을 뽑을 테니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당선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았을 땐 기분이 어떨떨 했다. 이후 내게 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에게 연락해 소식을 전했는데, 한 선생님이 “내가 왜 이렇게 기쁜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이시더라. 그제야 마음이 환해지 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선작 ‘침착하게 사랑하기’는 권위를 등에 업고 폭력을 행사하는 ‘신’이 등장하는 시로, “다소 작은 세계를 말하려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가 돋보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지역감정이나 가부장제가 심한 곳에서 자라 권위와 차별에 스스로 거부반응을 많이 느꼈다. 문학작품을 읽으며 성별, 인종, 계급 등에 의해 나뉘는 권력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또한 내가 글을 막 쓰기 시작한 시기에 ‘#문단_내_성폭력’라는 해시태그가 한창 돌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복합적으로 남아 있어 권위 폭력에 대한 시를 쓰게 된 것 같다. ‘침착하게 사랑하기’가 권위 폭력 중에서도 젠더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독해하는 독자들도 있는데, 사실 ‘신’이라는 단어에는 성별이 없지 않나. 자신도 모르게 권력을 가진 존재를 남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담아내기 위해 작품에 신을 등장시켰다.
최근 트위터에 ‘침착하게 사랑하기’의 신은 2010년대의 시를 생각하며 쓴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사태가 벌어졌을 때, 말 그대로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읽으니 아름답다고 느끼는 한편 증오심이 들더라. 나는 다른 시를 쓰겠다는생각을 했고, 그래서 당선작에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라는 문장을 쓰게 된 것 같다.
등단 후 겪은 일들에 대해 말하며 문제가 되는 상황을 공유하는 ‘가시화 프로젝트’를 꾸렸다. ‘가시화’라는 이름은 내가 지은 것으로, 단어의 원뜻처럼 표면에 드러난다는 의미도 있고 뾰족하게 돋쳐 있는 가시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탁서를 받을 때 원고료가 기재돼 있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상황을 트위터에 공유했고 뜻이 맞는 시인들이 모여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문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등단 장사’에 당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한다.
2020년 3월 선보인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등단 당시 문단 내 성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과 연관이 있는 한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내 작품을 수록하는 걸 거절했다. ‘침착하게 사랑하기’를 포함해 투고작 5편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그 대신 내가 직접 독자를 모집한 후 글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해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를 기획했다. 약 한 달 동안 신춘문예 투고작과 당선작을 포함해 내가 만든 시, 콩트, 이미지 등을 보냈고 디자인과 교정·교열까지 도맡았다. 신청을 받을 땐 ‘사랑을 믿으시나요?’ 같은 질문이 포함된 온라인 양식을 사용했는데, 그 덕분에 독자와 나 사이에 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작품을 낭독하는 목소리를 녹음해 보내준다는 것 또한 다른 메일링 서비스와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말을 듣고 싶다’와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끔은 그저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떨림, 감정 등이 담긴 낭독 파일을 함께 보내는 것이 더 복합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엔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다.(웃음) 그리고 잡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상한 문장들이 떠오르면 메모해두었다가 시에 풀어낸다. 생각을 기록해놓지 않으면 일상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만, 시로 쓰면 뭐라도 나오는 거니까.
등단 이후 지금까지 문예지 등을 통해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소개한다면? 웹진 <비유> 31호에 수록한 시 ‘히든 밀키웨이’는 하얀 액체가 담긴, 김이 나는 머그컵을 잡고 있는 화자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액체는 따뜻한 우유일 테지만 작품 안에 ‘차갑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들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품을 통해 자주 다루고자 하는 주제나 생각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허무는 것.
오늘날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이라고 느끼나? 내가 가진 힘과 비슷하다. 나는 한 인간으로 보면 보잘 것없지만, 어떤 일이든 벌인다면 무궁무진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내가 문제를 공론화해 사람들이 뭔가 알게 되고 오늘처럼 인터뷰하는 것도 그 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남기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면? 얼마 전 인터넷 검색창에 ‘마리끌레르’를 검색했더니 ‘신나고 폼 나게 놀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라는 소개 글이 보이더라. 나도 신나고 폼 나게 놀 수 있는 시를 써보겠다.(웃음)
2021년의 작은 목표와 큰 소망이 궁금하다. 작은 목표는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집을 마음에 들게 완성하고 일정에 맞춰 무사히 출간하고 싶다. 이 책 역시 에세이만 싣지 않고 복합적인 것들을 담아낼 예정이다. 그리고 큰 소망은 에세이집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웃음) 농담이고, 누군가 침착하게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3
MUSICIAN
안병웅
PROFILE
2017년 청소년 힙합 경연 대회 ‘ROOKIES OF KAC’ 대상,
2018년 ‘오픈 마이크 스웨거’ 준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2019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8>에 출연해
‘붐뱁 루키’로 화제가 됐다. 2020년 4월 첫 EP <BARTOON24>
발매를 시작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WHO AM I
바트 심슨
한 팬이 선물해준 인형이다.
천방지축에 장난도 심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데도
사랑받는 만화 <심슨가족> 속
바트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스케이트보드
올해 직접 구매해 타기 시작했다.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숱한 실패를 거쳐야 하는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보더들이 멋있다.
스니커즈
2020년 8월 23일, 스물두 번째 생일에 뮤지션이자
현 소속사 ‘웨이비’ 대표인 콜드가 사줬다.
이 스니커즈를 받으니 ‘내가 콜드 형의
사람이 됐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안병웅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직접 소개한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나?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는 래퍼이자 뮤지션이다.
<쇼미더머니 8>에서 1990년대를 연상시키는 붐뱁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1999년생으로서 당시 문화를 접하는 게 흔한 경험은 아닐 것 같은데, 언제 힙합을 처음 접했나?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등학교 진학 후 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즐겨 듣는 곡들을 나열하며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살펴봤는데, 빈티지한 분위기의 노래들을 좋아하더라. 붐뱁의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조이 배드애스의 믹스테이프 <1999>다. 그 이후 힙합의 흐름을 거슬러 좇아가며 1990년대 음악에 빠졌다.
랩 실력은 어떻게 키웠나? 어떤 분야에서든 항상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그들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다는 패기만만한 생각을 해왔다. 랩을 할 땐 특히 더 그랬는데, 이런 성향이 내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처음엔 특출하지 않았지만, 그 생각 덕분에 점점 달라지며 성장할 수 있었다.
본인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은 누구인가? 2년 전부터 지금까지 비기 스몰즈를 좋아한다. 단어의 사용이나 배치, 리듬을 만드는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도 참 멋있는 것 같다. 특히 그가 노래를 부를 때 기술적으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울부짖는 듯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한편 재즈는 힙합과 마찬가지로 흑인의 문화라고 여기던 장르인데, 그럼에도 그가 이 분야에서 현재까지 인정받는 아티스트로 남은 점 또한 인상적이다.
2020년 4월 발매한 EP <BARTOON 24>에서 재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원래 재즈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듯하다. 또한 어릴 때 소풍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의 장면이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때 봤던 만화 <톰과 제리> 같은 빈티지한 사운드도 앨범에 담았다.
<BARTOON 24>는 안병웅이라는 이름으로 낸 공식적인 첫 앨범이다. 음악적으로 무엇을 가장 보여주고 싶었나? <BARTOON 24>는 앞서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한 믹스테이프 <Bartoon: 36>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이다. 믹스테이프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 내가 기존에 하던 음악은 랩에 주력한다기보다는 노래의 성향도 띠고 있다. <쇼미더머니 8>에서 랩 실력으로 주목받았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보니 실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벌스 위주로 준비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BARTOON 24>에서는 내 음악적인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고, ‘Drown’을 타이틀곡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놓친 부분이 있다면 가사를 나 자신만 알아듣게끔 썼다는 점이다. 듣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느낀 부분이 많아 음악을 들려주는 일을 하는 뮤지션으로서 아쉽다. 실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는 피드백을 꽤 받기도 했다.
이후 8월에 싱글 앨범 <I BALLIN’>을 발매했는데, 정통 붐뱁과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곡들을 수록했다. 그리고 사운드클라우드에서는 ‘navigation’, ‘I’m Not A Boy’를 비롯한 곡을 공개하며 오토 튠을 더한 싱잉랩을 들려주기도 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내게 ‘붐뱁 래퍼’라는 이미지가 생겼는데, 붐뱁만 하기보다는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I BALLIN’>은 그런 의미로 만든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곡들은 취미 생활을 하듯이 만들었지만 다음에 만들 음악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 같기는 하다. 붐뱁을 중심으로 하되, 그 외의 부분에서는 다양한 것들도 함께 하려고 한다.
래퍼로서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톤이다. 목소리 자체가 미성이라 높은 톤으로 랩을 해도 인위적이지 않다. 붐뱁이나 빡센 랩을 할 땐 찔러 박는 듯한 발성을 내고, ‘Drown’ 같은 노래에서는 톤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쇼미더머니 8> 출연 이후 한 인터뷰에서 “<쇼미더머니>에 다시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는데, 2020년 10월 방송을 시작한 아홉 번째 시즌에 출연했다. <쇼미더머니 9> 래퍼 모집 게시물이 올라왔을 때까지도 전혀 출연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이번 시즌이 수많은 기회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내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많은 사람이 보는 방송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여덟 번째 시즌에서는 방송이 진행될수록 ‘그동안 잘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반면, 이번에는 뭔가 잃을 게 많다고 느꼈고 카메라를 통해 비치는 모습에 대한 부담도 컸다. 실제 방송에도 내가 떨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더라.
<쇼미더머니 9> 트리플 크루 배틀에서 안타깝게 탈락했다. 끝나고 나니 어떤 기분이 드나? 일단 이번 시즌에 원했던 것들은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 3차 예선 때 붐뱁이 아닌 비트에 랩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I BALLIN’>에 수록된 ‘부어’의 벌스를 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붐뱁 래퍼로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 수 있겠다고 느낀 값진 경험이었다.
향후 <쇼미더머니 10>이 방송된다면 나갈 생각이 있나? 진짜 안 나갈 거다.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몇 번 했다.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끼나? 예전에 비해 생각을 많이 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 가족과 회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나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조금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발매를 앞두고 있는 앨범이 있다면? 미니 앨범을 구상하고 있다. 2021년 초 발매를 목표로 준비 중인데,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곡들처럼 크게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 것이다’라고 길을 제시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 생일이 있는 8월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싶다. 정규 앨범은 말 그대로 ‘영혼을 갈아’ 만들 예정이다. 아마 새롭다고 느껴지는 붐뱁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에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와 큰 소망은 각각 무엇인가? 정규 앨범을 예정대로 8월에 발매하는 것이 작은 목표다. 그리고 큰 소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한 곡이라도 음원 차트 100위 안에 들 수 있다면 좋겠다.
100위는 작은 목표에 가깝지 않나? 그런가? 그럼 50위로 바꿔야겠다.(웃음)
4
ACTOR
김동휘
PROFILE
2014년 데뷔해 이후 10여 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배우로서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20년으로
첫 장편 주연작인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시작으로
단편영화 <피터팬의 꿈>과 드라마 <비밀의 숲 2>를 통해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했다.
WHO AM I
필름 카메라
사진 찍는 걸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필름 카메라 고유의 톤을 선호한다.
매일 쓰는 카메라가 따로 있는데
수리를 맡겨서 요즘은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노트
연기를 시작하면서 노트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캐릭터도 분석하고,
촬영하면서 일기도 쓰고, 그날 해야 할
일도 적어둔다. 요즘은 아이패드 같은 데
쓰는 사람이 많은데, 난 노트에
직접적는 게 더 좋다.
연필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이것저것 끄적이는 걸 좋아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해서
꼭 샤프가 아니라
깎아 쓰는 연필만 쓴다.
김동휘라는 배우를 알린 첫 작품 <비밀의 숲 2>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부터 반전을 일으켜야 하는 역할까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작품의 다음 시리즈에 참여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부담감이 조금 더 컸다.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촬영 내내 일부러 나를 압박하면서 연기했다. 욕먹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게 봐준 분들이 많아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작품에서 1화에는 익사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 후반부엔 그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이자 이를 알아챈 서동재 검사(이준혁)까지 납치한 범인 ‘김후정’으로 진짜 정체를 드러냈다. 드라마 중반부까지 내가 그런 역할인 줄 몰랐다. 처음엔 1화에 잠깐 나오는 ‘대학생 1’로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어서 그 촬영이 끝난 후부터는 나도 서동재의 납치범이 누굴까 궁금해하는 시청자였다. 심지어 대본에 ‘범인은 극악무도한 놈이다.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 있지?’라고 써놨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나였다.(웃음) 역할 자체도 반전이었지만, 드라마 중반부쯤 감독님이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동휘야, 이제 다 말해줄게”라고 했던 때가 나에겐 가장 큰 반전의 순간이었다.
2020년에는 <비밀의 숲 2> 외에도 제18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국내경쟁 대상을 수상한 영화 <피터팬의 꿈>, 그리고 개봉을 앞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까지 출연했다. 김동휘 배우에게 2020년은 어떤 시간이었나? 평생 생각날 것 같은 작품을 만난 시간이었다. 특히 첫 장편영화 주연작이자 최민식 선배님과 마주하며 연기할 수 있었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여러모로 의미가 더 크다. 촬영하면서 선배님께서 연기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를 계기로 연기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다른 세계를 만난 느낌이랄까. 선배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배움을 통해 깨달은 연기는 무엇인가? 아직 연기에 대해 깨달은 게 있다고 말하긴 이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연기 역시 정답이 없는 길을 찾아야 하는 거니까. 다만 오답이 있다는 건 알게 됐다. 그걸 하나씩 지워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찾은 오답은 어떤 건가? 나는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마다 이 사람이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상의 캐릭터지만 실제로 어딘가에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타당성이나 당위성을 많이 따지고, 터무니없는 건 잘 안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가끔 고정관념이라는 오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도둑 역할을 맡았을 때 ‘도둑은 이럴 것이다’라는 전제를 두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원래 그런 사람은 그렇게 하잖아’ 하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다.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방식은 찾았나?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주관적 생각이나 신념에 대해 듣게 되는데, 어떨 땐 상대방이 내 생각과 정반대의 얘기를 한다. 그럴 때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에 골몰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계속 확장해가면, 내가 알고 있던 게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 결국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제일 어렵다. ‘이 정도면 다 안 것 같아’ 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더 찾아낼 게 없다 싶을 때가 와도 더 파고들어야 디테일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방식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본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깥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내향적인 사람, 가끔은 감성적인 사람, 큰 것보단 별 것 아닌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
김동휘라는 배우를 대중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찾아본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사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누군가를 주목하고 신경 쓰는 일에 대중들이 지친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보다 내가 더 열심히 해서 굳이 주목하려고 하지 않아도 주목하게끔 만드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1년, ‘이 정도는 이룰 수 있다’ 하는 작은 목표와 큰 소망은 무엇인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잠시 멈췄지만 그 전까지 매주 러닝을 했다. 연기하는 데 필요한 몸의 힘을 기르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은 1킬로미터에 5분대인데 30초 줄이는 게 목표다. 작은 목표는 아니지만, 꼭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여기서 언급해두려고 한다. 큰 소망은 누구나 꿈꾸는 여행. 이게 이렇게 큰 소망이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스위스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해보고 싶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이 외에 연기적으로는 딱히 어떤 역할이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작품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 2020년이 배우로서 첫 단추를 끼운 해라고 생각하는데, 2021년엔 그다음을 하나씩 무리하지 않고 채워가고 싶다.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나? 나름 위치에 맞게 잘 끼운 것 같다.
5
DESIGNER
최원서
PROFILE
가구 시리즈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로 2019년
공예·디자인 창작자를 지원하는 ‘일상오브제’ 공모전의
당선자로 선정됐다. <크리에이터스 그라운드>를 시작으로
여러 전시 및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2020년 초 독일의 디자인
카운슬이 주최한 아인 운트 츠반치히(Ein untZwanzig)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WHO AM I
줄자
가구 만드는 일을 하다보니 치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딜 가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줄자는
디자인할 때 필요한 기본 도구 중 하나다.
농구공
가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피드백도 늦는 편이다.
반면 농구는 득점 기회가 많아 성취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점에 희열을 느껴
농구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린다.
프라이탁 가방
산업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클래식한 디자인의 가방.
방수 페인트 색이라 더 좋아한다.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방향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 다섯살 무렵부터 무언가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일회용 젓가락, 쿠킹 포일 등을 활용해 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이나 친구에게 줄 선물을 직접 만들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무젓가락 여러 개를 겹쳐 붙인 후 일일이 깎고 사포질을 해가며 완성한 케로로 피규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처음엔 건축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건축이 가장 큰 범위의 디자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내 성적으로는 건축학과의 장벽이 높아 다른 분야에 대해 고민했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어 산업디자인학과에 지원했다.
대학 진학 후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나? 학교에서 우간다로 봉사 활동을 떠날 인원을 선발할 때 ‘박스툴(BOXTOOL) 프로젝트’를 구상해 제안했다. 당시 버려지는 소재에 관심이 많았는데, 기부 물품을 담는 데 사용하는 플라스틱 박스가 쓰레기처럼 남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활용해 현지에 필요한 걸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담당했던 초등학교 학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스툴을 디자인했다.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를 찾아보며 박스 하나로 스툴 하나를 만들 수 있게 했고, 손재주가 없어도 쉽게 만들 수 있게끔 조립식으로 제작했다.
‘박스툴 프로젝트’를 하며 얻은 게 있다면? 나중에 돌이켜보니 과연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디자인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플라스틱 박스로 만든 스툴은 고작 1개월 정도 쓸 수 있을 텐데, 스툴보다는 박스 자체를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오래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 이후로는 내 프로젝트만을 위해 재활용하지 말고, 재료 자체를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디자이너로서 좋은 경험이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만든 가구 시리즈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로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언제 이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알루미늄 프로파일은 산업 현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품 중 하나다. 2018년 가을 을지로에 갔다가 우연히 이 부품들을 발견했는데, 단면을 모아 새로운 문양을 만들면 예쁠 것 같았다. 이후 알루미늄 프로파일은 마감이 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유지와 관리도 쉽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바로 휴학하고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 제작에 돌입했다.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알루미늄 프로파일은 보통 수직으로 세워 결합하는데 나는 단면이 모여 이루는 패턴을 보여주기 위해 수평으로 결합해야 했다. 일반적인 결합 방식이 아니어서 고민이 많았고, 공사장에 음료수를 들고 찾아가 인부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또 가구의 제작만큼 해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용접하기보다는 볼트와 너트를 활용해 조립할 수 있는 방식도 연구했다.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 시리즈의 첫 작품은 스툴이다. 여러 가구 중 스툴을 가장 먼저 만든 이유가 있나? 스툴은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처럼 앉도록 만든 가구지만 사용자에 따라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다른 물건을 올려놓아도 좋고, 위에 다른 것들을 쌓아 올려 새로운 걸 만들 수도 있어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가구마다 적합한 높이가 있는데,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여러 개 모았을 때의 높이는 스툴에 가장 알맞다고 판단했다.
스툴을 시작으로 화병, 조명, 벤치, 테이블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최근작은 지난여름에 만든 ‘모듈 테이블’이다. 네모난 테이블 상판과 모서리 부분에 기존 은색이 아닌 다른 컬러를 추가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의 단면이 결합해 패턴을 이루듯, 테이블을 여러 개 모으면 또 다른 패턴이 생긴다. 향후 벽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패턴을 보여주는 라인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모듈 테이블이 그 중간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플라스틱을 녹인 후 프레스 작업을 거쳐 제작한 트레이 ‘트레이스(TRACE)’와 클레이 타입의 콘크리트로 만든 스툴 ‘케이브(CAVE)’는 제작 과정에서 생긴 텍스처를 그대로 살렸다. 소재를 잘 관찰하고 공정에 대해 공부하면 또 다른 재미를 가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트레이스’가 가진 불균형한 형태와 ‘케이브’의 거친 마감은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산업 소재의 장점은 무엇인가? 산업 소재는 기능적으로 견고하며 재료 수급이 편하고, 이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반면 창작자의 시각으로 봤을 땐 새롭게 느껴져 매력적이다. 한편 ‘산업의 색’ 하면 개인적으로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파란 천이나 건물 옥상 바닥에 칠해진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떠오른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해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 달리 보면 이 또한 아름답다. 예전에 윌 스미스가 내한했을 때 서울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SNS에 올렸더니 ‘일부러 옥상에 정원을 꾸며놓은 것이냐’며 반응이 뜨거웠던 적도 있지 않나.
요즘 디자인 가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가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가구는 본래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그 단계를 충족한다면 디자이너가 창작 능력을 발휘해 무언가 재미있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사유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아트’와 ‘퍼니처’의 속성을 모두 갖춘 분야다.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나만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2021년, ‘이 정도는 이룰 수 있다’ 하는 작은 목표와 큰 소망은 무엇인가? 이른 나이에 만든 첫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부담감이 생기기 마련이고, 다음 작업을 기준으로 이전의 성과가 운인지 실력인지 판가름 난다. 내가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는 다음 작업을 잘해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큰 소망은 연매출 2억원 달성이다.(웃음)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매출이 내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성과를 달성하며 스스로 ‘잘하고 있구나’ 하고 확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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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DIRECTOR
최하나
영화 <애비규환>
PROFILE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을 위해
반강제적으로 시나리오 한 편을 써냈다. 소재는 가족이지만,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방향으로 그렸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없었지만, 5년 후 결국 그
이야기로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제목은 <애비규환>.
WHO AM I
소나무 인형
꿈이 무병장수다. 그래서 이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인 소나무 인형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집에도 하나 걸어뒀다.
에코백
주성치 영화를 좋아해 그의 작품 제목을
실 스크린 작업으로 프린트해
직접 에코백을 만들었다. 위부터
순서대로 <희극지왕> <정고전가>
<파괴지왕> <가유희사>.
물뿌리개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안 하면 뭘 하면서 살지
고민했을 때 후보 중 하나가 식물
돌보미였을 정도로. 이건 식물 돌볼 때
필수품, 물뿌리개.
<애비규환>은 어떻게 시작한 영화인지 궁금하다. 대학에서 시나리오전공을 했는데 졸업하려면 장편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해야 했다. 장편 시나리오는 처음이라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모르는 거창한 세계를 다루는 것보다 나나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을 참고해서 쓰는 게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택한 소재였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는 가족영화는 어떤 것들인가?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얄 테넌바움>, 이안 감독의 초기작인 <결혼 피로연>과 <음식남녀>. 그리고 사라 폴리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처럼 소소한 코미디가 묻어 있는 가족영화를 좋아한다.
언급한 작품들이 <애비규환>을 만들 때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 얘기한 영화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가족에 대해서 애정 어린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으면서 따듯하기만 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괜찮아’라는 식으로 나이브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애정을 갖는 동시에, 완전히 냉소적으로 끝나지는 않는 태도 말이다. 쿨하다고 해야 할지 따듯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모호한 정서를 내 영화에도 담고 싶었다.
2015년에 쓴 시나리오를 5년 만에 영화로 완성했다. 긴 시간을 거쳐서라도 결국 완성해야 했던 명분이 있었나? 사실 완성하고 싶은 강력한 의지나 명분이랄 건 없었다.(웃음) 그냥 이 이야기가 재미있고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뿐. 오히려 촬영을 하는 2019년에는 시대가 많이 달라지고 특히 여성 서사에서 원하는 것들이 많이 달라지는 바람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건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비혼이 화두가 된 시대에 결혼하려고 하는 여자 이야기가 과연 시의성이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래도 이 영화는 이혼이나 정상 가족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니까 완전히 진보의 끝에, 최전선에 가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임신으로 시작해 결혼으로 끝난다. 이 말만 들으면 전형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전개는 기존 영화들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임신과 결혼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실 결혼이나 임신, 출산이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데 영화에서는 기능적으로 쓰였다는 비판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결혼과 임신에 관한 게 아니라, 주인공 ‘토일’이 가족에 대해서 갖고 있던 콤플렉스나 환상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이건 토일의 이야기고, 토일이 이런 소동을 겪으면서 가족에 대해서 갖고 있던 생각들을 발전시키고 바꾸는, 그래서 변화하는 이야기니까 거기에 주력하고 싶었다. 임신과 결혼은 토일의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걸 이상한 방식으로 낭만적으로 미화하거나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요소는 신파가 없다는 거다. 부모와 자식의 서사는 얼마든지 울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인데도, 이 영화는 울 것 같은 기분 이상으로 감정이 고조되지 않는다. 그건 확실히 의도한 부분이다. 내가 코미디로 잘 웃기다가 끝에 신파로 빠지고 마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울리지 않으면서 울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방향을 추구했다. 실제로 음악감독에게 가장 많이 얘기한 게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울었다는 사람이 많아서 충격이었다.(웃음)
주인공 토일 역을 정수정 배우가 맡았다.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송에서 수정 씨를 보며 사랑받으려고 혹은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토일이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본 관객 중에서 토일이 너무 이상하다거나 포스터에서부터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심기가 불편했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원하는 토일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 여자 캐릭터가 보고 싶었다. 특히 어린 여자 캐릭터가 자기 원하는 대로 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모습. 그리고 수정 씨라면 내가 생각한 면모가 더 잘 드러날 것 같았다.
이 영화가 모험이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제일 잘하는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하나? 잘하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모험이었던 것 같다. 가족 이야기이고, 내 경험이나 내가 지금까지 봐온 가족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거라 시작하기는 쉬웠는데 잘 끝맺기가 무척 어렵더라. 가족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데 그런 통찰을 얻기에 내가 아직 많이 미숙했다. 이야기를 좋게 고쳐나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 영화를 내 영화 인생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찍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토일에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고쳐나갔다.
<마리끌레르> 2020년 11월호에 <애비규환>의 세 여배우(장혜진, 강말금, 정수정)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때 장혜진 배우가 “감독님이 살짝 똘끼가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나도 그 글을 읽고 생각해봤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다.(웃음) 촬영하면서도 “이런 시나리오를 쓴 것 자체가 또라이”라는 말을 하시긴 했다. 그런데 나는 되게 온건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똘끼가 극도로 유니크한 걸 말하는 거라면 나는 그 정도가 아니다. 세상엔 똘끼를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고, 나 정도면 준수한 거다.
1990년대생 여성 감독이다. 이 사실이 작업 과정에 미치는 여파가 있었나? 없지는 않았다. 내가 밀레니얼 세대로 태어나서 공유하는 가치관이나 여자라서 자주 할 수 있었던 고민들이 확실히 영화에 반영된 것 같긴하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는 어떤 사건을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사람이 감독으로 있건 소통이 조금 어려워지는 순간들이 생기지 않나.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하필 내가 여자고, 1990년대생이고,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진짜 지금 이상한 건가?’ 하며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긴 했다.
첫 장편영화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할 수 없었던 건 무엇이었나? 우선 내가 경험이 없고 어리기 때문에 스태프들과 좀 더 허물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에게서 권위를 못 느끼는 게 좋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작업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반대로 처음이었기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영화를 몇 번 더 만들어보고, 더 많이 본 상태였다면 이미지나 사운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겠지만, 그런 것들은 주로 촬영감독님께 많이 의존하게 됐다.
그리고 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면? 이 영화의 엔딩을 지키는 것.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엄마가 아닌 두 명의 아빠와 손잡고 입장하는 게 어떠냐는 얘기도 나왔는데, 그렇게 할 거면 찍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결국엔 잘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엔딩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그걸 해내는 게 어려웠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영화도 가장 힘든 게 사실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로 얻게 된 병이 있다면, 그걸 치유해주는 것도 결국엔 영화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거다. 최근에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님과 관객과의 대화(GV)를 같이 했는데,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면 그 영화에 친구들이 생긴다고 하셨다. 그 말이 되게 오래 남더라. 그래서 누가 이 영화의 친구가 될지 생각해봤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의 호스트로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건데 어떤 사람들은 손님으로 왔다가 금방 가버리지만,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머물러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손님에서 친구가 되는 사람들, 그게 내게 생각보다 큰 선물이었다. 만든 사람으로서는 엄청 큰 위안이자 힘이 되고. 그런 것들을 얻었다.
영화가 아직 상영 중이다. 개봉 후 지금까지 감정의 파고는 어떠한가? 일희일비하는 감정의 파고가 요동을 쳤다. 만들 때도 당연히 힘들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힘들더라. 왜 이렇게 영화를 안 보지?(웃음) 이런 마음에 속상했다가 다른 날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다독이게 된다. 그러다가 영화의 친구들이 생긴다는 윤단비 감독님의 말을 듣고 나서 조금 잠잠해졌다.
2021년에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와 큰 소망은 각각 무엇인가? 작지는 않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완성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그리고 큰 소망은 웨이트트레이닝에서 3대 중량을 200kg 달성하는 것. 지금 100kg이 조금 넘는데, 꾸준히 근력을 키워서 지금의 두 배를 달성하고 싶다. 다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소망으로 남겨두겠다.
영화감독이라는 일은 해보니까 어떤가?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계속 할 수 있을까? 그게 과연 나한테 달린 문제일까?(웃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