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홀에 나무 의자가 동그란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게스트를 위한 의자는
아니었다. 아치 형태의 창문이 있는
엄숙한 분위기의 이 공간은 밀라노
산업디자인 박물관이다. 루크 & 루시
마이어가 이끄는 지금의 질샌더를
공간으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거다. 듀오는 미니멀리즘이 아닌
‘순수’를 얘기했다. 디자이너 질 샌더는
미니멀리즘의 대표 주자다. 하지만
이 둘의 옷은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멀다. 형태와 컬러는 단순하지만 룩
하나하나에 더해진 장인정신, 자칫 놓칠
수 있는 디테일은 보는 이를, 무엇보다
입는 이를 감탄하게 한다. 유연한 소재로
선이 굵은 옷을 만드는 것 역시 강점.
니트 소재의 롱 베스트와 슬릿 스커트,
송충이 털처럼 보송보송한 실로 짠
셔닐(chenille) 니트 드레스와 케이프,
무겁게 움직이던 프린지 드레스가 좋은
예다. 아무렇게나 걸쳐도 섹시할 블랙
코트, 어떤 하의와 입어도 멋질 재킷, ‘
어디서 사셨어요?’라는 질문이 쇄도할
벌룬 블라우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릴 구원해줄 ‘히어로 피스’였다. 교회
예배당을 연상케 한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질샌더의 신도가 됐다. 이런
종교라면 발 벗고 전도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