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패션에 있어 장인정신,
헤리티지, 전통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은
현대적인 기술과 장인정신, 하우스의
시그니처와 자신의 취향, 오래된
것과 미래적인 것 사이에서 끝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물론, 휘둘리지
않는 디자이너도 있다. 제레미 스캇은
항상 자신이 가장 신나는 컬렉션을
선보인다. 이번 시즌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
19 사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끊이지 않는 내전, 꺼지지 않는
산불이 코앞에 닥친 문제였다. 제레미
스캇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입었을 법한
파니에 드레스, 1960년대를 상징하는
미니스커트를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여줬다. 특별한 의미를 담진 않았다.
하지만 환호하는 관중, 일주일 내내 본
것 중 가장 밝은 얼굴로 워킹을 하던
지지 하디드의 모습에서 제레미 스캇의
큰 그림을 읽을 수 있었다. 즐거움, 웃음,
행복. 제레미 스캇은 이래저래 골치
아픈, 상처받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쉴
틈 없는 스케줄에 지쳐 있던 에디터 역시
어린아이처럼 환호하며 쇼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