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혼돈 속에서도 에르뎀이 구현한 로맨티시즘은 여전히 서정적이며 아름다웠다. “세기의 스캔들이자 수전 손택의 명작 <화산의 연인(The Volcano Lover)>의 주인공 에마 해밀턴과 넬슨 제독의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여태껏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뮤즈를 선택한 에르뎀 모랄리오글루는 이번 시즌 영국의 전설적인 요부이자 비운의 삼각관계에 휘말렸던 여인 에마 해밀턴을 떠올리며 동화 같은 컬렉션을 완성했다. 울창한 숲 사이를 서서히 걸어 나오는 에르뎀의 뮤즈들은 리본을 단 밀리터리풍 엠파이어 실루엣 가운을 비롯해 야생화를 입체적으로 장식한 오간자 소매 원피스, 진주를 알알이 수놓은 수트 등 여성성을 극대화한 옷을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에마 해밀턴의 다사다난한 상황에 걸맞게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은 요소를 첨가하고 싶었어요.” 이런 바람은 깊게 파인 오버사이즈 브이넥 카디건을 느슨하게 걸치는 스타일링을 통해 매력적으로 구현됐다. “당장 종말이 온다고 해도 그 누가 핑크색 무아레 가운을 입고 싶지 않겠어요?” 한 매체와 인터뷰하며 디자이너가 한 말마따나 처절한 록다운의 시대에도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은 쭉 계속될 듯하다.